전우용의 근대 한국사 에세이 2편. 1편에 이어서 한국 사람임에도 잘 모르고 있었던 얘기들의 보따리가 펼쳐진다. 주로 100년 이내의 근현대사 사건들을 다루지만 일반 역사서처럼 연대기적으로 설명하지 않아서 아무 편이나 펼쳐서 간략하게 읽을 수 있다. 몰랐던 사건들을 접하면서 지식을 넓혀가는 부분도 있지만, 지난 역사적 사건들로 현대를 바라보고 동시대의 생각의 흐름또한 같이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이다. 역사를 깊고 넓게 읽는 저자같은 학자들의 고찰은 두고두고 곁에 두고 읽고 싶어진다.
60꼭지에 담긴 ‘오늘’들
3월 1일, 7월 17일, 8월 15일은 굵직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날이다. 반면 1월 7일과 12월 30일에서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저 새롭게 시작된 해의 일곱 번째 날과 그 해의 마지막 하루 전날일 뿐이다.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앞으로 이전한 것과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칭한 것도, 독립을 외치고 헌법을 만들고 해방을 이룬 것에 비한다면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 사건이다. 그저 흥미로운 교양 상식 늘려주는 정도일 뿐이다.
우리 역사는 깊다 (전2권)는 이처럼 무의미한 듯한 ‘오늘’들의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역사’들을 되살려 ‘2015년 대한민국’을 곱씹는다. 서울은 깊다 , 현대인의 탄생 등 여러 저서를 통해 말해지지 않은 역사를 소개하고 그것을 통해 현재를 성찰하는 데 힘써온 역사학자 전우용이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중 첫 번째인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오늘들의 역사’다(2부 근대의 사생활 (가제)과 3부 공간 너머 (가제)는 각각 2016년, 2017년에 출간 예정이다). 저자는 귀성 풍습의 기원, 예방 접종의 시작, 전등 시대의 개막, 위생 관념의 확산, 대중교통 수단의 도입 등 주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오늘’의 작은 사건들을 소개하고, 성찰의 재료로 삼을 만한 요소들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덧붙인다.
그때그때 날짜에 맞춰 총 60개의 주제를 선정했기 때문에 꼭지들 간 연관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모든 꼭지를 관통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역사란 시간·공간·인간의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라는 생각이다. 저자는 수많은 작은 ‘오늘’들의 다양한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이야기들을 통해 100년 전과 현재가 얼마나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를 살핀다. 저자가 풀어놓는 어제의 ‘오늘’들은 낯설지만 흥미롭다. 저자가 어제의 ‘오늘’들로 지금의 ‘오늘’에 던지는 메시지는 쓰지만 통렬하다.
책머리에
7월 18일_을축년 대홍수
인간은 자연에 얹혀사는 존재일 뿐
7월 22일_자동차취체규칙 제정
또 하나의 가족이 된 자동차, 새 가족을 얻은 대신 잃은 것들
7월 24일_광무신문지법 공포
탄압받던 언론에서 ‘한통속’이 된 언론
7월 29일_양화진에 외국인 묘역 조성
글로벌시대, 한국인의 사생관死生觀과 외국인 묘지
8월 4일_김우진, 윤심덕 현해탄 투신
자살률은 시대의 ‘우울도’ 측정하는 바로미터
8월 6일_서소문 화교들의 삶
‘외국인 혐오증’, 우리가 용납될 공간도 줄인다
8월 10일_일제, 서울 시민의 공동묘지 용산 땅을 군용지로 수용
기억에서 지워진 공동묘지 용산, 삶 주변에서 사라진 죽음
8월 12일_보건부, 무면허 의사 275명 적발
의료 민영화, ‘가난이 사형선고’인 사회를 만든다
8월 19일_한성전기회사, 전등개설예식 개최
‘불야성’을 현실 세계에 구현한 전등, 그래도 늘 부족한 현대인의 시간
8월 20일_청계천 복개 계획 제출
복개에서 복원까지, 청계천의 역사와 인간의 변덕
8월 23일_여자정신근로령 공포
만행의 기록이 문서로 남는 경우는 드물다
8월 29일_일본, 한국 국호를 조선으로 변경
남이 이름 지어준 대로 불리는 자, 식민지 백성
8월 31일_종로경찰서, 종로변 상점에 변소 설치 지시
민주 사회의 관리들, 다양하고 상충되는 시민들의 요구 경청하고 설득하는 자세 필
9월 15일_추석 임시열차 증편 운행
귀성과 민족 대이동, 이제 사라질지도 모를 한국적 ‘전통문화’
9월 26일_일본 제실박물관장, 순종 황제 알현
‘빼앗은’ 나라의 박물관과 ‘빼앗긴’ 나라의 박물관
10월 1일_가로명제정위원회, 새 동명과 가로명 고시
나라의 중심가로 세종대로, 그러나 나라의 정치 철학은?
10월 7일_종두규칙 공포
전염병 예방의 시대, 예방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
10월 12일_대한제국 선포
우리나라 국호 ‘대한민국’에 담긴 뜻
10월 22일_청산리대첩
청산리대첩의 주역 홍범도, 그에게도 이 땅에 설 자리 하나쯤은 마련해주어야
10월 23일_일본 덴노, 조선총독에게 〈교육칙어〉 하달
〈국민교육헌장〉으로 이어진 〈교육칙어〉의 군국주의 정신
10월 27일_장충단 설치
대한제국의 국립현충원 장충단, 털어내지 못한 오욕의 흔적
11월 4일_훈민정음 반포 팔회갑 기념식 개최
‘반글’, ‘암클’에서 ‘한글’이 된 훈민정음, 지금 다시 ‘반글’이 된 건 아닌가
11월 11일_경무청, 채소 도매상 단속
물가 단속으로 민심 다독이려 한 ‘권력 주연 코미디’의 서글픈 역사
11월 17일_우정총국 개국, 우편사무 개시
우편사무 개시와 지번 부여, 모든 것을 숫자화하는 시대를 열다
11월 27일_대한제국, 정동 부근에 고층건물 신축 금지
고층화를 향한 욕망, 뒷수습은 어찌 할까
12월 3일_조청국경회담 결렬
동북아 영토분쟁, 냉철한 역사인식으로 대처해야
12월 10일_안창남의 ‘고국 방문 대비행’
여의도 상공을 비행한 안창남, 한국인에게 3차원의 시야를 선물하다
12월 17일_지전 상인들, 조선지주식회사 설립
명분 없는 이득 경계했던 옛 상도, 지금 우리 기업문화에 절실히 필요한 것
12월 24일_셔우드 홀, 크리스마스실 발행
유병장수有病長壽 시대, 질병과 오래 동거하면서도 불행해지지 않을 방법 찾아야
12월 30일_경무대를 청와대로 개칭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민심 살피고 국민 즐겁게 하는 ‘대’라는 이름에 충실했으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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